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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법칙
 한국근본불교  | 2007·06·13 16:45 | HIT : 2,434 | VOTE : 99

1.연기법(緣起法)

  이미 앞에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것을 말했다. '깨닫는다'는 말은 만들어낸다는 어던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있어 왔던 진리에 대한 발견이라는 의미이다.

  "연기의 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고 나오지 않건간에 이 법은 상주(常住), 법주(法住)요, 법계(法界)이니라. 여래는 다만이 법을 자각하여 바른 깨달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설하나니‥‥."

  이미 있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방법론은 귀납의 논리로써 현대 자연과학의 진리와 모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도 바로 이 연기의 자각에 그 원인이 있다.

  연기란 무엇인가?

  어떤 것에 말미암아서(緣)일어난다. 즉 생긴다(起)는 의미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위해서 他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요, 그 역(逆)도 성립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기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이다. 서로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

  A의 존재에 반드시 B으 존재가 전제가 되며,그 역도 성립한다는 연기의 이론은 A만으로 는 존재할 수 있는 성질. 즉 자성(自性)을 A스스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성립시킨다. 무자성(無自性)이다. 연기이므로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자성은 인도 정통철학의 아트만이다. 아(我)이다. 이러한 (我)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무아(無我)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대승불교의 아버지 용수(龍樹)보살은 연기 ― 무자성 ― 공(空)의 논리를 내세웠다. 공(空)이 곧 연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로 시작되는, 위에서 언급한 게송은 후세의 학자들이 '연기의 공식'이라고 한다. 연기의 공식에 대한 공간적 고찰에서 우리는 공(空) 사상 이해의 실마리를 갖기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연기의 공식에 대한 시간적 고찰을 해볼 때 인과(因果)의 법칙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다.

  '이것'이 씨앗이라면, '저것'은 열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因), '저것'을 과(果)라고도 한다. 또는 인을 짓는 의지적 작용을 업(業)이라고 하고, 그래서 생기는 필연적 반응이나 결과를 보(報)라고 한다. 인과업보(因果業報)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긴다.

  연기는 대승불교에 이르면 불교의 두 가지 사상의 하나를 이름하기도 한다. 실상론(實相論)과 연기론(緣起論)이다. 전자는 본체(本體)에 대한 철학이며, 후자는 현상(現象)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한 연기론철학은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아뢰야식(阿賴耶識) 연기설, 진여(眞如) 연기설, 법계(法界) 연기설, 육대(六大)연기설 등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 모든 발전된 연기설이 기초로써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이 자리하고 있다.

2.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

  사성제와 마찬가지로 십이연기 또한 '어떻게 하여서 괴로움이 생기고, 어떻게 해야 괴로움이 소멸하는가?'라는 주제를 같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물론 사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실천적 행위규범의 제시에 더 큰 강조점이 주어져 있고, 십이연기는 다만 현실의 생기(生起)와 사멸(死滅)의 논리적 이해에 더 큰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는 비교가 가능하다.

  사성제에서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무명(無明)은 명이 아닌 상태이다. 즉 진리에 대해 밝게 인식하지 못함을 이른다. 괴로움의 최초의 근본원인은 무명이다. 십이연기설은 무명에서부터 어덯게 생.노.병.사.우.비.고.뇌가 생기는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무명으로 말미암아서(緣) 행(行)이 있게 되고, 행으로 말미암사서 식(識)이 있게 되고, 식으로 말미암아서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으로 말미암아서 육입(六入)이 있게 되고, 육입으로 말미암아서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말미암아서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말미암아서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말미암아서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말미암아서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말미암아서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말미암아서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뇌(惱)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集)이 있게 된다."

  따라서 불교의 이상인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서는 즉, 노. 사. 우. 비. 고. 뇌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생이 솔멸되어야 하고, 생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유가 소멸되어야 하고, 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취가 소멸되어야 하고, 취를 애가 소멸되어야 하고, 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수가 소멸되어야 하고, 수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촉이 소멸되어야 하고, 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육입을 소멸해야 하고, 육입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명색을 소멸해야 하고, 명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무명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무명에서 노사까지의 생기(生起)의 십이연기법을 관찰하는것을 순관(順觀)이라고 하고, 후자의 노사에서 무명까지의 사멸(死滅)을 관찰하는것을 역관(逆觀)이라 한다. 이 두 가지 사고의 유형은 후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연기(還滅緣起) 에 각각 논리적 대응을 이루고 있다. 이제 십이연기의 각 지(支)마다 간략한 설명을 하기로 하자.

(1)무명(無明, avidya)

  진리에 대한 (無知) 이다. 연기적 존재이므로 '나' 라고 집착할만한 것이 없는데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오온에 대한 집착(五取蘊苦)의 고통에서 설명하였다.

(2)행(行, Samskara)

  무명이 있으면 그 무명의 힘이 현재화(現在化)된다. 그러한 무명의 현실적 작용을 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impulse 즉 충동이라고 옮기고 있다.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충동이라고 볼 수 있다.

(3)식(識, Vijnana)

  식은 후대의 대승불교에 오면, 가장 중요한 술어중의 하나인데 식별(識別), 분별(分別) 또는 요별(了別)의 뜻이다. 이 식을 더욱 세분화해서 6식, 7식, 8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4)명색(명색, Nama―rupa)

  명은 정신적인 것을 가리키고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명색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상태를 말한다. 오온(五蘊)에서는 색온(色蘊)이 색(色)이 되고, 수. 상. 행. 식의 온(蘊)들은 명(名)이 된다.

(5)육입(六入, Sad―ayatana)

  외부 세계의 객관적 사상(事象)을 인식하게 되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의 여섯이다. 흔히 육처(六處), 육근(六根) 이라고도 한다.

(6)촉(觸,Samparsa)

  촉은 '접촉하다, 충돌하다'의 뜻이 있다. 위의 육입(六入, 안.이.비.설.신.의)과 육식(六識, 육입에 의지해서 발생한 개별적인 여섯 가지의 의식)이 화합하여서 촉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7)수(受, Vedana)

  수는 느낌, 즉 감수(感受)작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괴로움(苦), 즐거움(樂), 괴롭지도 아니하고 즐겁지도 아니한 평등한 느낌의 세 가지로 크게 나눈다.

(8)애(愛, trsna)

  사성제에서 집제의 내용은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갈애가 바로 이 '애'이다. 이 애는 감정적ㅇ니 번뇌로서 가장 치성하다고 한다. 후대에는 이러한 마음의 장애를 번뇌장(煩惱障)이라하고, 무명이 지혜에 장애가 된다고 할 떄의 소지장(所知障)과 함께 가장 큰 두 가지 장애(二障)라고 했다.

(9)취(取, upadana)

  애의 상태만 하더라도 좋고, 싫다는 감정을 느낄 뿐이지, 그에 대해서 극심하게 집착하는 경지는 아니다. 강하게 집착하는 것은 취(取)라고 한다. 이 취라는 술어는 오취온고(五取蘊苦)등에서도 쓰이고 있다.

(10)유(有, bhava)

  bhava라는 말은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의 동사어로 bhu라는 말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존재'의 의미와 '생성'의 의미의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경전에서는 이 삼계(三界)가 有의 세계라고 해서 욕유(欲有), 색유(色有), 무색유(無色有)를 언급하고 있다.

(11)생(生, jati)

  유는 생사하는 그 자체라는 의미이고, 생은 생사한 것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입장은 생(生)조차도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12)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

  여기의 생과 사는 육체적 생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ㅇ니 괴로움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가르침이 십이연기설이다. 초기경전에서 설해진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가르침이다. 그 안에는 사성제, 오온, 십이처 등의 교설이 종합적으로 정리. 조직되어 있다.

  
  존재의 인식  한국근본불교 07·06·14 2666 94
  깨달음의 내용  한국근본불교 07·06·13 2734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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