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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내용
 한국근본불교  | 2007·06·13 11:09 | HIT : 2,734 | VOTE : 106

1.중 도(中道)

  붓다의 깨달음은 그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 일이므로, 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추측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또 그의 가르침 모두가 다 깨달음의 내용일 수도 있겠으나, 그 많은 교리와 사상을 하나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부처님이 깨치고 나서 제일 먼저 설법을 했을 때 한 이야기가 그에 가장 가깝고, 세월이 흐르면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교리 내용을 조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 함께 수행했던 다섯비구를 찾아온 부처님. 그들을 앞에 두고 최초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다.〔初傳法輪)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가지 극단적인 길이 있으나 수행자는 그 어디에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된다. 여래(如來)는 이들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버리고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른바 '中道의선언'이다. 두 가지 극단은 무엇일까?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답되어질 수 있다. 첫째, 인식론적으로는 이 세간(世間)이 영원히 실재(實在) 하고 절대적인 존재〔神〕도 있다고 하는 有的인 견해〔常見〕와 세간간과 절대자는 물론이거니와 긴간의 존재까지도 물질의 결합에 불과하다고 보는 無的인 견해 〔斷見〕의 양 극단이 있었다. 둘째, 실천윤리적 측면에서의 두 가지 극단은 붓다의 개인적인 체험의 역사와도 결부되면서 쾌락에 치우친 삶과 고행(苦行)에 치우친 삶이다.

  이러한 인식론적이거나 실천윤리적인 두 가지 종류의 모든 극단에서부터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자유로워졌다.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원리는 이후 불교사를 관통하면서 모든 대립과 투쟁을 극복, 조화시켜 가는 원리가 된다.

2.사성제와 팔정도

  최초의 설법에서 붓다는 중도적 입장에서 ― 극단적 사고에 기울지 아니하고 ― 현실을 판단 하고 이상에의 지평을 열어보이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신다. 즉 사성제(四聖啼)가 그것이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괴로움, 괴로움의 집(集),괴로움의 멸(滅),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길(道)의 네 가지 성제가 곧 그것이다."

  첫째, 괴로움의 진리에 대해서 경전을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을 드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것이 고생제(苦聖啼)인가?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미운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한 마디로 오온(五蘊)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둘째, 괴로움의 원인〔집〕에 대한 진리는 괴로움 발생의 이유에 대한 언급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集(Samudaya)이라는 말은 원래 Sam(결합하다)과 Udaya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집(集)은 모은다(Collect)는 뜻이 아니라 한역에서 집기(集起)라고 번역하듯이 연기의 의미와 매우 가까운 말이다.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무명(無明)이고, 다른 하나는 갈애(渴愛)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십이인연설 역시 '어떻게 해서 괴로움이 생기며,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어지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는 측면에서 이 사성제의 교리와 구조적동일성을 갖고 있는데, 노사(老死)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최초의 원인은 무명이다. 무명은 밝지(明) 못함, 즉 지혜가 없는 상태이다. 그 다음, 갈애는 위의 고성재의 팔고(八苦)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오온에 대한 집착심(執着心)을 일컫는 것이다. 무명이 지적(知的) 번뇌라면, 갈애는 정의적(情意的) 번뇌이기도  하다.

  셋째,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는 괴로움의 현실을 극복, 초월한 뒤에 당연히 오게 되는 희망적인 비젼(Vision)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굳은 약속이다.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가한 약속이야말로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짓게 한다. 멸(滅)은 열반(Nirvana)이다. 욕망의 세찬 불길이 꺼지 상태, 바로 깨달음의 경지이다.

  넷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이다. 붓다가 괴로움의 현실을 종식시킬 실천적 가르침으로써 베푼 것이 곧 여덟 가지 올바른 길(八正道)이다. 이 팔정도에 대해서는 하나하나씩 상술하기로 한다.

(1)정견(正見):올바른 이해.

  경전에서는 사성제를 수행할 때 "법(法)을 잘 결택(決擇)하여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 되어 있다.

(2)정사유(正思惟):올바른 생각.

  바르게 사유하고, 바르게 마음먹는다는 뜻으로써 "생각할 바와 생각안할 바를 마음에 잘 분간하는 것."

(3)정어(正語):올바른 언어.

  네 가지 악한 구업(口業), 즉 거짓말, 이간질 하는 말, 아첨하느 말, 욕설 등을 하지 않는 것.

(4)정업(正業):올바른 행위.

  세 가지 악한 신업(身業), 즉 살생, 도둑질 , 도덕적으로 그릇된 성(性) 행위를 하지 않는 것.

(5)정명(正命):올바른 생활.

  올바른 직업생활로써 적절한 방법을 통해 의식주를 구하는 것. 

(6)정정진(正精進):올바른 노력.

  귾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

(7)정념(正念):올바른 억념(憶念).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인데,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

(8)정정(正定):올바른 명상.

  바르게 집중한다는 뜻으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아서 선정(禪定)에 드는 것.

  이 여덟 가지 중에서 정견(正見)과 정정(正定), 즉 지혜와 선정의 올바름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성격은 지(止.Samatha)와 관(觀,Vipasana)의 병수라든가, 정(定)과 혜(慧)와 쌍수(雙修)라고 하는 후대 불교사상에 그 근원적인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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